브라질 이야기

2019 다문화 축제를 가다 - 한식 알리기 봉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착한브라질 2019. 5. 2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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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피라시까바에서 매년 열리는 다문화축제. 자선단체가 모여 선정된 나라 음식을 판매하고 여기서 벌어 들이는 수익은 연간 운영비로 쓰이는 뜻깊은 행사다. 한국관도 8년 전부터 열리는데 재작년에는 상파울루 총영사관의 요청으로 올해는 현지 CRAMI 한국관 담당 단체의 부탁으로 참석했다. 한식 위크 준비로 힘든데 엄청 바쁘게 준비해서 갔다 왔다. 음식 선정과 재료 구입 및 구성할 일이 많은데 음식 이름은 물론, 식재료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려니 정신없었다.


저녁 늦게까지 육아에 한식위크 준비로 의사가 처방해준 약 사 먹을 시간 없이 때우다 새벽부터 일어나 빨래 널고 애들 유치원 보내고 혼자 고속도로를 달렸다. 피곤한 것보다 아침에 떼어놓고 온 애들이 눈에 밟힌다. 매일 그렇지만 멀리 여행 가렸는데 특히 눈물지으며 하트 날리는 애들, 아내 얼굴이 눈에 겹친다. 그래도 오늘 내가 가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아 힘차게 달린다.


한국문화도 잘 모르는 곳에서 없는 재료로 만들려니 힘들다. 두 시간 비를 뚫고 도착한 행사장. 그래도 공기 좋은 지방이어서 기분은 상쾌하다. 급하게 화장실 달려온 후 옷도 못 벗고 십 수가지 양념과 재료 준비하는데 심장이 터질듯하다. 순수 봉사자가 모여 운영하는 행사여서 음식을 만들어본 경험자 없다. 양파 하나를 썰어도 빵 써는 칼로 10분 걸려 자른다. 지방이라 파와 부추 등 기본 재료도 향과 맛이 달라 쓰지 못한다.


이게 부추여 잡초여? 어라 이건 파 같은데?


그래도 있는 것 가지고 힘차게 만드는데 아뿔싸! 비가 억수로 내린다. 2년 전에는 비가 너무 와 강이 넘쳐 행사 취소 직전까지 갔었다. 비가 오면 당연히 입장객은 줄고 수익은커녕 손해만 보게 생겼다. 비가 멈추기를 바라며 내가 오기 전 미리 준비한 닭튀김과 부침개를 보는데 참 할 말이 없다. 처음에는 쉽게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줬을 텐데 시간 지나며 많이 변형됐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건 한국식 양념치킨과 부침개가 아니다.


다행히 비가 멈추며 저녁부터 손님이 한 둘 모인다. 아내도 퇴근하고 버스 타고 온다고 하는데 너무 늦게 도착하여 호텔에서 쉬라고 했다. 밤 11시 혼자 호텔로 걸어가는데 무섭다기보다 끊어질 듯 아픈 허리와 어깨가 더 힘들었다. 다행히 아내가 있어 많은 위로가 된다. 밥도 못 먹고 뛴 하루, 그래도 호텔로 오기 전 산 달달한 츄러스로로 입가심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둘째 날


분명 잔 것 같은데 잔 것 같지 않은 잔 기분. 호텔에서 간신히 아침을 먹고 아침부터 행사장으로 뛴다. 그래도 지방이라 공기는 좋고 상쾌하다. 우리도 이런 조용한 곳에 사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보는데 역시나 많은 제한이 있다. 지방으로 떠나는 사람은 누구나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애들 키우며 살다 생활의 불편함을 발견하기 까지. 보통 아프면 갈 수 있는 병원이 한정되어 있고 물건을 사고 싶으면 상파울루 대도시로 나가야 한다. 결국 다시 돌아간다.


역시나 봉사자가 도와주는 하루. 말없이 일 저지르는 사람 몇 명 빼고 대충 그래도 돌아간다. 전날 양념과 재료 다듬어 두어 큰일 없을 줄 알았는데 계약에도 없었던 김밥과 잡채도 만들어 달라고 주문이 들어온다.  뭐여? 잡채? 김밥?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음식! 하여간 아내와 나 의자에 앉을 새 없이 12시간 달려 일한다. 갑자기 만든 김밥 40줄, 산만큼 만든 잡채, 부침개도 예전과 달리 정통 한식으로 만드느라 갈고 쓸고 정신없다.


지방으로 떠나는 사람은 누구나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애들 키우며 살다 생활의 불편함을 발견하기까지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요리를 연구하고 요리법을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주된 일이다. 예쁘게 꾸미고 차리는 것은 역시 아내가 잘한다. 예상대로 이번 행사에서 가장 큰 인기는 역시 김치만두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오늘의 큰일은 역시 행사장을 찾은 한국인. 브라질 봉사자가 만든 닭튀김 양념이 맘에 안 들었는지, 한국 치킨은 이게 아니라며 화를 낸다. 한국 맛을 내고 싶어도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고 행사 목적이 아닌데 뭐라 한다. 봉사자의 얼굴이 일그러져 다독였다.


드디어 토요일 행사를 끝내고 호텔로 걸어갔다. 그래도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해서 무서운 줄 모르겠다. 온종일 서서 일하느라 아내 허리가 안 굽혀지고 나는 큰 팬을 휘두르누라 팔이 마비됐다. 둘이 얼굴도 쳐다보지 못할 만큼 피곤하다. 진통제 먹고 서로 등에 물파스 발라 주는데 눈물이... 잠시 눈 붙이고 아침 일찍 짐 챙기고 또 행사장으로 간다. 오늘도 기절한다.


셋째 날


드디어 일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아침 일찍부터 신나는 칼질이 시작됐다. 우리가 하면 10분이면 끝나는 칼질, 봉사자는 한 시간 걸리고 잘못 썰어둔다. 빵 써는 칼로 양파, 당근 써는데 일이 밀리고 답답해 그냥 우리가 한다. 양파, 당근 호박 등 몇 킬로 썰다 보면 손가락이 마비된다. 김밥, 삼겹살, 잡채, 부침개 모두 열심히 만들었다. 짧은 시간에 이걸 다 말들 줄 상상도 못 했다. 일요일 마지막이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주문이 밀린다. 만드는 사람, 챙기는 사람,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없어 한눈팔면 일이 터진다.


양념치킨인데 양념을 따로 주고 만두와 부침개에 뿌리는 간장을 컵에 담아줘 손님이 그냥 마시게 한다. 봉사자 모두 요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방 경험이 없고 또 한두 시간만 하고 사라져 일이 이어지지 않는다. 몇 년 전 배운 요리법을 잘못 활용하여 음식 완성도가 떨어져 욕먹는다. 울 부부는 원래 조리팀을 지도하러 갔는데 요리만 실컷 하고 왔다. 배고파 기웃거리는 봉사자를 위해 마지막 큰솥에 5킬로 불고기 만들어주고 마무리했다. 음식 냄새에 질린 울 부부를 위해 남은 삼겹살을 볶아 3일 만에 한 끼 했다.


한눈팔면 일이 여기저기 팡팡 터진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시간에 나와 깜깜한 밤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집에 도착하여 이리저리 정리하다 마지막에 먹는 라면. 요리하다 보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다행히 아이들은 내일 아침 부모님이 유치원에 데려다주신다 하여 울 부부 편히 잔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느낀 건 역시 우리 한식이 갈 길이 멀다. 그래도 꽤나 찾는 사람이 많다.


돌아오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데 내년에는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장사하면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운영자는 수익이 남아야 한다. 큰돈은 아니어도 수익이 남도록 팔릴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자꾸 주위 한인이 김밥, 잡채, 비빔밥 하라 바람을 넣었나 보다. 근데 이곳에는 좋아하는 사람도 적고 손도 많이 가고 이익도 크지 않아 힘들다. 그리고 정작 어떤 게 한식 인지 제대로 모르고 말 많은 사람이 밉다.


멋진 내년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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