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Samba)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브라질 음악인 보사노바(Bossa Nova). 이 보사노바를 창시한 음악가 주앙 질베르토가 지난 7월 세상을 떠났다. 35년 이민 생활 중 가장 기쁘게 해주는 음악이 기타와 피아노가 은은하게 어우러진 보사노바였는데 그 창시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잠시 우울해졌다.
가끔 한국이나 외국 친구를 만나면 브라질 노래, 특히 삼바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곤 하는데 솔직히 삼바는 잘 모른다. 그럴 때 나는 엘리스 헤지나와 톰 조빙이 1974년에 발표한 <아구아 지 마르쏘> 같은 보사노바 음악을 불러준다. 듣기에는 편안하게 들리지만 보사노바는 박자와 음정 맞추기가 힘들어 부르기엔 어려운 음악이다. 그래도 브라질을 가장 잘 표현한 음악이라 나는 평소 보사노바를 즐겨 부른다.
매년 상반기에 열리는 카니발 기간 동안 브라질 전역에는 삼바가 넘쳐난다. 세계 최대의 삼바축제가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삼바의 인기가 단연 최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상파울루에서 그리 인기 있는 음악이 아니다. 참고로 브라질은 삼바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있다. 한국에 비해 브라질은 지방색이 강하고 여러 민족이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한 가지 음악만으로 브라질 음악을 설명할 수가 없다.
아마존을 비롯해 북동부 지역에는 포호(Forro)란 음악이 대세이고, 목축업이 발달한 중서부에는 미국 컨트리 음악과 비슷한 세르타네조(Sertanejo) 음악이 주류를 이룬다.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음악은 ‘MPB( Musica Popular Brasileira)'라고 불리는 브라질 대중음악이다. MPB는 삼바, 록, 보사노바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이 어우러져 일상을 노래하고 사랑을 속삭인다. 1980년대부터 유행한 록 또한 여전히 사회적으로 많은 인기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광고나 드라마 배경음악으로도 삽입되고, 신세대 음악가가 리메이크해 발표하면서 꾸준히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브라질에서 빈민촌을 ‘파벨라’라고 부르는데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 시작한 펑크 음악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여 듣는다.
10대부터 브라질에서 살다 보니 아무래도 나는 한국 음악보다 브라질 음악을 더 많이 접하고 듣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브라질 음악을 들으면서도 세대 차를 느낀다는 것이다. 40대 후반인 내가 요즘 유행하는 힙합과 펑크 음악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이나 브라질 음악이나 마찬가지이다. 70년대 생 서태지 세대에 속하는 나도 한때 꽤 빨리 랩을 외우고 불렀는데 기성세대에 접어들다 보니 실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진다. 이런 고민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또래 브라질 친구도 같이 공감하는 부분인지 가끔 만나면 ‘요즘 음악은 쓰레기’라며 못 알아듣는 가사 탓을 한다.
가끔 라디오에서 유독 내 귀에 잘 들리는 노래가 나올 때가 있다. 한참 집중해서 자세히 들어보면 내가 아는 한국 노래를 번역해서 부르는 것이다. 아예 한국 노래를 틀어주는 경우도 있다. 최근 한국 케이팝이 브라질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 지난 5월 상파울루에서 방탄소년단 공연이 개최되었는데 공연을 보기 위해 남미에서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버스를 대절해 온 각국 사람들이 한인촌에서 한식당과 한국 식품점을 찾아 다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내가 들린 한 식당에서 한국메뉴 주문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어 포르투갈어로 “도와줄까요?” 했더니 “아닙니다. 제가 주문하겠습니다”라며 한국어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을 보고 새삼 케이팝으로 높아진 한국에 대한 인기를 실감하기도 했다.
케이팝 가사를 번역해주는 유트브 채널과 전용 온라인 라디오 방송이 생길만큼 한국 음악이 유행하는 걸 보면서 케이팝도 브라질 음악의 한 부분을 자치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손정수_
브라질 33년차에 접어든 쌍둥이 아빠이자 한인 칼럼니스트로서 블로그 ‘착한 브라질 이야기’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인 이민자로서 겪은 브라질의 정치, 역사, 문화 등에 관한 경험담을 쓴 <떠나기 전 꼭 읽어야 할 브라질 이야기> 펴냈습니다. 현재 ‘반찬닷컴 브라질’ 대표로 한식강연과 요리강습을 통해 브라질에서 한식 홍보활동도 펼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