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야기

이민 35년의 자화상

착한브라질 2019. 12. 4.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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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인 1984년 12월 4일. 만 11살에 한국을 떠났다. 요즘은 강산이 3년마다 바뀐다는데. 내가 한국을 떠나고 벌써 열 번은 넘게 바뀌었다. 초등학교 5학년 다니다 떠나는 나를 친구들이 헹가래 쳐준 게 생각난다. 나이 많으셨던 담임 선생님은 이민 가면 많이 못 먹을 것이라며 도시락 먹을 때 꼭 김치를 주셨다. 반에서 가진 마지막 수업이 기억난다. 앞으로 나와 인사하라며 노래를 시켰다. 이때 부른 노래는 "등대지기" 지금도 가끔 들으면 그냥 눈물 난다.


어쩌다 보니 35년이 흘렀다. 한국에서 온 소년이 이제 배불뚝이 중년이 되었다. 당연히 한국보다 브라질에서 더 오래 살고 있다. 이민 생활하며 누구나 겪는 인종차별, 모르는 언어로 표현 못 하는 당혹감, 특히 다른 세계에서 맞닥뜨리는 문화 충격은 트라우마로 남는다. 지금도 나를 가끔 긴장하게 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요즘에는 오히려 이곳과 다른 세계에 사는 같은 한국인 때문에 힘들다. 그렇다. 사람은 어디든 적응한다.


35년 이민 삶에서  한글을 잊지 않고 쓴 것이 가장 큰 자산이 됐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우리는 이곳에서 이방인이다. 어제도 주민 대표 회의 중 나를 일본 사람이라 부르는 친구가 있다며 서로 웃고 지적하는데 나는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잘해도 이들에게 나는 외국인이다. 나와 같은 시기에 온 친구들. 나보다 상급자인 고등학교 다녀오던 사람도 한국어를 잘 못 한다 못 쓴다 그러는데 나는 끝까지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누가 가르치는 곳이 있지도 않던 시절. 쪼가리 신문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읽고, 닥치는 대로 책을 빌려 읽었다. 문법이 까다로워 지금도 많이 틀리고 잘못 쓰고 있는데 계속 쓰며 배운다. 글과 말은 세월에 따라 바뀐다. 이곳에서 십수 년 산 사람도, 한국에서 막 온 사람도 잘 못 쓰는 말이 있다. 이를 보면 내가 이래도 되나 생각 든다. 이제는 이곳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남겨줄 선물로 글을 많이 모아 책을 쓰고 있다. 포어로 요리 책도 쓰고 있다. 


사진 속 우리 아버지 어머니보다 이제 내 나이가 더 많다. 반갑게 웃는 여동생 얼굴에서는 내 딸 표정도 보인다. 세월이란 참 빠르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따라 신앙심을 가진 것, 한글을 잊지 않은 것, 우리 아내와 결혼해 아이들을 낳은 것. 이 모두 이민의 결과이자 과정이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있을 날이다. 좌절하지 말고 앞으로 굳건히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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