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야기

비행기를 발명한 브라질인 - 산토스 두몽

착한브라질 2012. 3. 24.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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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료와 서류를 토대로 조사해 보니 산토스 두몽이 비행기를 발명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할 뿐더러 라이트 형제가 발명한 것이 맞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브라질 언론과 학계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바 있습니다. 아래 글은 10여 년 전에 쓴 글인데 당시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글 임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브라질하면 아마존 밀림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원시적이고 발전되지 않은 나라.특히 얼마전 방영된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프로그램은 이곳 교민들도 접하기 어려운 정보를 알리는 것은 좋으나 브라질이 전부 그렇다고 단정 짓게 만든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런 브라질도 세계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오늘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먼저 간단한 질문…세계최초로 비행기를 만든사람은?
이런 질문을 브라질 사람에게 할 경우 라이트 형제를 발명가로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santos Dumont 이 세계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했다고 한다.

산토스 두몽(1873년~1932년)그는 누구인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버지쪽이 프랑스계인 브라질인이다.
커피농장 지주였던 아버지는 어렸을적부터 기계에 관심을 보이던 아들을 1891년 19살에 프랑스로 유학을 보냈다. 파리에서 기계공학, 물리, 화학, 전류를 연구하며 특히 열기구에 푹 빠져 연구와 개발에 시간을 많이 보냈다.

1901년 Henry Deutsch de la Muerte 라는 사업가가 열기구로 30분 이내에 에펠탑을 한 바퀴도는 이에게 10만 프랑코를 상금으로 주는 대회를 열었다. 여러명이 도전했다가 실패를 반복하는 사이 그해 10월 19일 산토스 두몽은 자신이 직접 제작한 번호 6번 기구로 30분에서 29초를 넘겨 성공 논란이 있었으나 프랑스 과학기술부에서는 오랜 토론 끝에 인정하여 상금을 받았다.

당시 모나코 국왕이었던 알베르토 1세는 산토스 두몽에 대한 지지를 보이고자 왕실의 격납고 사용을 허가했는데 이곳에서 날개를 달은 번호 11번 그리고 현대의 헬리콥터를 닯은 번호 12번 모델이 개발되었다.

1902년에는 미국으로 여행을 가 당시 최고의 발명가였던 에디슨과 면담하였으며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의 환영 리셉션이 있기도 했다.

역사상 최초의 비행은 1906년 10월 23일 파리 바가텔리 공원에서 14-bis 비행기로 평지에서 자체 동력으로 3미터의 높이로 60미터를 날았다. 이날 행사에는 소문을 들은 수 많은 인파와 기자 그리고 학계 관계자들이 몰려와 증인이 되었고 전세계적으로 뉴스되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 과학기술부에서 제정한 최초의 비행자에게 주는 Archdeacon 컵과 상금은 산토스 두몽에게 돌아갔는데 정작 두몽은 상금은 자기를 도와준 기술자와 저속득층에게 나누어 주었다.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그해 11월에는 220미터를 비행하는 등 발전이 있었다.

아래 링크는 발명 100주년을 기념하에 2006년에  제작한 14-BIS 모델의 비행이다.



이런 천재에게도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고질적인 우울증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천재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조울증이라고 하는데 심각한 생각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젊어서 나타타기 시작한 발작은 며칠에서 몇주간 지속되기도 했는데 정신적으로 크게 의지하던 아버지가 사망하며 그 증세가 악화됐다.

비행기 발명으로 각국으로부터 공로상을 받는 등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정작 자신의 분신같은 비행기가 1차 세계대전에 비행기를 무기로 사용하자 여기에서 두번째 큰 충격을 받았다. 유럽이 전쟁으로 시끄러울 때 브라질로 돌아온 산토스 두몽은 발명에 일진했다.

유럽과 브라질을 오가며 치유와 발명을 하던 두몽은 1926년 1차 세계대전후 탄생한 국제연맹에 비행기를 무기로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1928년 배로 브라질로 돌아오던 두몽은 리우데 자네이루 시에서 준비한 환영 행사 수륙양용기가 추락하여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자 충격을 받았다.

치유에 혼 힘을 썼던 산토스 두몽은 1932 연방정부와 상파울로 주정부간의 전쟁으로 또 다시 비행기가 전쟁에 쓰이자 괴로워 했고. 자신이 처음 비행기를 탔던 파리 바가텔리 에서 이름을 딴 상파울로 바가텔리 공원이 7월 23일 연방군의 폭격을 받자 크게 상심하여 그 날 과루자 해변가에서 자신을 보호하던 조카의 눈을 피해 권총 자살 59세에 생을 마감했다.

여기까지가 역사적으로 풀이한 브라질의 위대한 발명가 산토스 두몽의 역사이다.

그럼 왜 라이트 형제가 세계적으로 비행기를 발명했다고 하는냐 하면..

이들은 1908년에 비행기를 띄우며 전세계 언론에 전보를 쳤는데 유럽에서는 이미 1906년에 산토스 두몽이 성공한 일을 왜 이제와서 알리냐고 묻자 사실은 1903년에 성공했다고 정정해 달라고 하면서 불거졌다.

라이트 형제는 1903년 몇명이 모인 즉 확실한 증인과 기자, 사진 그리고 과학자가 없는 상태에서 비행했다고 주장하는데 또 다른 논란은 자체 동력이 아닌 언덕 위에서 아래로 굴려 반동력으로 비행기를 날은 것이지 자체 동력으로 날은 것은 아니다.

이러하면서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이유는 신흥국가로 떠오르던 미국의 영향이 있었다고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자국의 기술우위를 알리기 위해 조직적으로 국가에서 개입하여 허구를 만든 것이 아닌지 하는 것이다.

사실 산토스 두몽의 자살 사건도 비행기 때문에 괴로워서 그랬다고 하지만 실은 심한 조울증으로 고통 받다가 사망한 것이 정설인데 이를 당시 군사정권이였던 제뚤리오 바르가스 정권에서 교묘히 스토리를 붙여 영웅으로 만든 것이라고 요즘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하여간 프랑스와 브라질은 산토스 두몽을 항공기의 개척자로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사실!

산토스 두몽의 또 다른 발명품은 우리에게 친근한 남자용 손목시계이다.


원래 여자용 손목시계는 오래전부터 액세서리로 부자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었으나 남자용은 없었다.
비행기를 조정하다 보면 양손을 쓰게 되는데 당시 회중시계를 보려면 주머니에 손이 가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친구이며 유명 보석공이었던 luis cartier에게 가죽끈으로 만든 손목시계를 주문했는데 이 때부터 남자들도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게 되었다.

천부적인 발명가 산토스 두몽은 브라질의 자랑이며 인류애른 나타내는 과학자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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