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야기

브라질 패션을 리더하는 브라질 한인들

착한브라질 2013. 4. 22.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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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성 감기로 아내와 함께 고생하고 있는 착한남편입니다.

가을로 접어들며 낮과 저녁 온도차가 심하고...

비는 안와서 공기는 탁하고....

환기철마다 유행하는 바이러스로 심하게 앓았습니다.

저야 뭐 평상시에 잘 걸리는 것이여서...

한 3주를 죽었다 살아났더니 괜찮은데...

옆에서 간병호를 해 주던 아내가 2주전부터 덜컥 아프더군요...

에 주사에...심한 목감기와 기침으로 걱정했는데..

어제는 아시는 분이 수퍼박테리아에 걸린 사람도 봤다고 해서...

병원을 찾아 엑스레이 촬영하고 검사 했습니다..

물론 큰 병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래도 약 많이 먹고 고생하는 아내를 보니 맘이 아픕니다....ㅠㅠ


자 오늘은 브라질 한인의 모습에 대해서 조금 써 보겠습니다.

제가 끄적거리는 이 글들을 보시는 여러분 중 브라질 한인들도 있는데...

몇번에 걸쳐 글을 쓰려다 보니 정작 못쓰겠더라고요...

잘못했다가는 욕 먹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평상시에 글들을 보며 너무 브라질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쓰는 것 같은데...

이쁘고...좋고...맛있는것도 있으나...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은 대충 잊어 버리고..

총격전...사건.사고는 사람 뇌리에 많이 남기에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요즘 우리 한인들이 많이 종사하는 의류업계가 위기라고 합니다..

먼저 수입에 의존하던 업체는 수입단가가 올라서 어렵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브라질에서 생산하는게 저렴하다가 한 10년전쯤부터 중국에서 생산해서 수입하는데..

세금도 많이 오르고 물류비도 오르고 해서 단가가 안 맞는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두번째로는 바느질 하청을 하던 볼리비아노 인들로 고생이라고 합니다.

볼리비아인들은 우리 한인들과 같이 의류업에 종사하는데 대부분 하청을 받고 있습니다.

돈 벌러 타국에 온 이들은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는게 꿈입니다.

따라서 열악한 환경이라도 잘 참고 일을 하는데..

정작 브라질 정부에서는 우리 한인들이 노예처럼 부려 먹는다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직접 고용한 것도 아니고 볼리비아 업체에 하청을 주면 이 업체가 다시 자기 동족 볼리비아노를 데리고 일을 하는데..

브라질 정부에서는 우리 한인들이 이들을 불법고용, 노예계약, 열악한 환경에 밖에도 못 나가게 문을 잠근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모든 책임의 원천을 찾는 것 즉 한국 사람들이 일감을 주기에 이런 노동환경이 존재한다고 보는 노동부...

그리고 두번째로는 세금도 안 내고 노조비도 안내는 볼리비아노 바느질 공장을 타겟으로 잡은 브라질인 공장 노조의 합작품입니다.

물론 불법.노동노예 건은 한국 업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유통업체 자라(ZARA)도 걸립니다...

하여간 우리 한인업체들은 억울하고 답답합니다...

일단 바느질 업체에서 일어나는 일, 업무환경, 직원 개개인의 등록 여부 등을 일일히 감시하기도 어렵고...

세금은 물론 돈을 팍팍 주고 싶지만 장당 10센트만 적어도 하청 업체를 바꾸는게 사업이 성과이기도 합니다.


너무 복잡하고 말들이 많아서 이번 법 개정에 대해서 설명회 비슷한 공청회가 한인회와 상파울로주 노동부가 준비해서 내일 연다고 합니다.

설명회에 앞서 한인들의 목소리를 모아본 사이트도 있는데 글들을 보면 성토의 장이 되었습니다.

아래 링크에 가 보면 한인들의 어려움. 고충을 털어놓는 것이 보입니다..


http://www.hanaro.com.br/zbxe/index.php?mid=free_talk&document_srl=267940


하여간 다시 한 번 한인사회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 글들은 제가 몇년전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내용중 변경된 몇가지 사항은 변경해서 다시 올립니다..

한인사회의 모습중 한 부분입니다..




이번에는 브라질 교포들의 생활에 대해서 써 보겠다. 뭐 거창하게 수치를 제시하고 사진을 곁들일 수도 있지만 이 보다는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 현실적인 모습을 선 보이겠다.


수 십년 전부터 5만 여명이 산다는 브라질 교포사회는 내가 보기에는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가끔 한인행사 때에 모이는 사람들 숫자를 보더라도 대충 4~5천명 정도만 추정된다. 뭐 어린 1.5세 또는 2세 3세 들과 60세 이상의 노령 인구까지 포함한다면 뭐 수만 명이 되겠지만 실질적으로 한인타운 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가장 좋은 수치를 제시해 본다. 대다수의 브라질 교포들은 자영업을 하는데 업체 전화번호를 한데 묶은 한인주소록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는 대표자가 등록되는데 대략 2500명 이상으로서 한 사람 당 5인 가족을 기준으로 계산하더라도 1만2500 명 이다. 등록 안된 사람이 2배라 하더라도 2만 5000명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한인사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적다는 것이다. 교포들이 몰려 사는 곳으로는 봉헤찌로, 브라스 그리고 아끌리마썽이 있다. 이중 봉헤찌로와 브라스는 상가지역으로 대다수의 교포들이 종사하는 의류업체 2천 개가 있다. 교포들은 대부분 의류제품 가게를 운영한다. 여기에 원사, 원단, 부속 등을 파는 가게 그리고 식당, 식품점, 병원, 변호사 등 서비스 업종 등 다양한 업종에 진출하고 있다.


브라질 이민 역사를 짧게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전쟁의 흔적이 다 가시지 않았던 60년대초 대한민국 정부는 이민을 장려하게 되며 몇년간의 걸친 사전답사 그리고 조사를 끝내고 1963년 첫 농업이민을 왔다. 당시 브라질은 커피와 사탕수수 등 농업에 필요한 일손을 외국 노동자들에 의존했고 일본 이민자들과 같이 한국 이민자들도 브라질로 초청하게 된다. 농업이민이란 브라질에서 농사를 짖는 조건으로 인구를 받아 들였던 것으로 이미 이탈리아, 일본, 독일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민 와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역사도 있다. 당시 이민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머나먼 브라질에서 가족과 멋진 농장을 일구며 한국보다는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며 출발했다. 말도 안 통하는 배에 온 식구들을 데리고 일본.홍콩.남아공을 거쳐 지구 반대편 브라질까지 오는 고생을 한 이민 선구자들은 바로 농장으로 보내져 농사일을 하게 되었지만 대부분 농사일에 익숙치 않았고 한국과 확연히 다른 날씨와 풍토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다.


정부의 주선으로 산 농장은 이미 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으로 알려진 곳도 있었고 중간 브로커의 사기로 피해를 입기도 했다. 4계절이 뚜렷한 한국과 달리 더운 지방이라 음식도 맞지 않고 더군다나 아이들은 학교도 없어서 공부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우리민족 특유의 교육열이 높으셨던 한인들은 이런 농장에서 있어봤자 미래가 안 보인다고 결정하고 노동계약 기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장을 벗어나 시내로 잠입한다. 허름한 시내에 자리를 잡은 한인들은 처음에는 가까운 일본인들로부터 소개를 받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옷을 판매하는 업에 종사한다. 그러다 차츰 옷을 만드는 유태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옷을 일본인들을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 하게 되고 조금 있다가 유태인들보다 더 빨리 좋게 옷을 만들기 시작하며 브라질 시장을 석권하게 된다.


70년대부터 농장을 떠나 시내로 나온 이들은 점차적으로 상업에 종사하며 한국인 특이의 부지런함으로 다른 민족들을 따 돌리고 의류업계를 장악하게 됐다. 왜 의류를 시작했냐 하면 먼저 당시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었다. 젓가락 질로 단련된 손은 예쁘고 값싼 제품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의류제품은 저가의 비용으로 많은 이윤을 남기는 데에 있다. 80년대를 선두로 급격히 성장한 한인사회는 지금은 2500여 개의 의류업체, 60여 개의 식당, 50여 개의 교회, 45여 개의 병원 등 100여 개의 업종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으며 교포들은 브라질 의류계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90년대 중반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상파울로 한인촌이기도 하며 의류의 메카인 봉헤찌로(Bom Retiro)와 브라스(Bras)에서 브라질 전체 의류의 60%에 해당하며 직.간접적으로 25만명의 고용창출을 내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의류생산지가 늘었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인촌에서 만들어 퍼져 나간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이 볼펜으로 뽄을 뜨고 가위로 안감을 자르던 시대에서 요즘 1.5세 2세들은 패션디자인과를 나오고 레이저로 안감을 자르는 등 전문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유럽.미국도 1년에 수차례 돌아보며 새로운 유행색상.원단을 배워와 이곳 브라질에 맞게 다시 제작된다. 한인들이 유행을 리더하다 보니 전국적으로 대형의류매장 구매담당자 그리고 도매업자들이 한인촌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입하기도 한다. 이들은 유럽이 아니라 바로 한인촌에서 유행을 배워가는 것이다.


브라질 교포들의 생활은 아직도 대부분 중류 생활을 한다. ‘아직도’ 라고 쓴 이유는 그 전에는 거의 모두가 중산층이었으나 요즘에는 교포사회 내에서도 빈부격차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브라질에 이민 오는 사람들의 발전 단계는 언제나 같았다. 90년대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남의 제품을 판매하는 벤데(Vende:판매)를 시작한다. 3년 정도 하며 어느 정도 모은 돈으로 가게를 조그만 하게 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점차 늘려 가는 것이 정상적인 발전이었다. 사업이 정상괘도에 들어서면 연말 장사를 하고 나면 적게는 수만 불에서 많게는 수십만 불이 남아 집을 사고 사업을 늘리는 등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상황이 많이 바뀌어 돈을 벌기기 쉽지 않다. 그 전에는 고인플레로 시중에 돈이 많이 돌아 장사가 수월했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경쟁이 없었던 시절이라 한 모델을 수 십만 장씩 만들었으나 지금은 한 모델 당 수십 장만 팔리는 등 소비자들의 취향도 많이 고급화되어 이들 구색을 맞추다 보니 원가가 많이 비싸졌고 수익도 많이 줄어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대충 눈대중으로 제품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1년에 몇 번씩 유럽을 다니며 패션감각을 익히는데 이들은 대부분 1.5세와 2세로 포어를 잘 하며 이민 1세와는 다르게 전문인력을 쓰며 세대교체를 확실히 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대충 오전에 7시에서 8시에 가게 문들 열고 오후에는 5시 반에 문들 닫는다. 그리고 주말에는 토요일 오전에만 근무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가게 정리, 제품 생산 준비 등으로 분주하지만 그래도 시간에 쫓기며 살지는 않는다. 주말에는 대부분 교회에 나가 기도도 하지만 골프, 낚시, 테니스 등 여가 생활을 주로 한다.여가 생활로 빼 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술과 음식이다. 소고기가 싸고 흔하다 보니 항상 고기를 구워 먹는데 여기에 술을 한 잔 걸치며 하루의 피로를 해소하는 사람이 많다. 술은 대체로 맥주와 위스키를 마시는데 예전에는 8년 산 Old Eight 라는 술을 대중적으로 많이 먹었으나 요즘에는 역시 조니워커를 많이 마신다. 때로는 브라질 전통의 술인 까샤사(Cachaca)를 마시는데 슈퍼에서 한 병에 10불 미만이라 싼 값에 찾는 사람들이 많다. 소주는 슈퍼에서 4불 그리고 식당에서는 10불 하는데 위스키 입맛이라 그런지 자주 많이 안 마시고 오히려 맥주를 더 많이 마신다. 


예전 같지 않게 안정된 경제로 돈을 벌기 쉽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까지는 중산층 생활을 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그렇다고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일단 자기 개발 시간이 많이 남는다. 일을 적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미국과 비교하면 이곳 교포들은 시간이 많이 남는다. 또한 차별 없는 사회는 아니지만 한국 사람들 대부분 인정을 받고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중남미 다른 나라들을 보면 한국 사람에 대한 반감과 차별로 서러울 때가 많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평범하면서 중요한 것인지 경험한 사람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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