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야기

몸에서 받아 들이는 우유 - 유당불내증을 이겨내다

착한브라질 2016. 12. 2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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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75%가 가지고 있는 유당불내증은 유당을 분해하는 '락티아제' 효소가 없어 소화하기 어렵게 한다. 나도 일반적인 한국인어서 그럴까 어렸을 적부터 고상한 이름의 유당불내중은 평생 힘들게 했다. 남들은 고소하다고 매일 마시는 우유를 조금만 마셔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복통은 물론이고 심할 때는 구토로 온종일 고생한다. 이처럼 나와 안 맞는 우유는 평상시 자연스럽게 멀리했는데 80년대 시작된 초등학교 우유 급식은 공포감을 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돌 전 크게 장염에 걸려 과민대장 증후군으로 항상 속이 아팠는데 먹기만 하면 탈 나는 우유를 의무적으로 마시고 특히 선생님이 안 먹는 학생을 따로 불러 남들 앞에서 마시게 한 기억은 고통으로만 남았다. 시간에 맞춰 우유를 받으러 갈 때는 짜증이 많이 났고 또 급식비로 돈을 내야 할 때는 도대체 왜 이런 걸 돈 주고 하는지 불만이 많았다. 그래도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여서 두 말없이 꼬박꼬박 돈을 냈고 몇 년 더 마시다 한국을 떠났다.


브라질에 이민와 며칠 안 되었을 때 첫 심부름을 간 것이 바로 우유를 사는 것이었다. 포르투갈어는 한마디도 할 줄 모르고 빵집이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말 잘 드는 13살 착한 어린이는 지폐 몇 개 받아 들고 불안감 한가득 안고 집을 나섰다. 길 건너 몇 블록 지나 지금도 있는 빵집은 사람들로 붐볐고 들어가기 전 우유를 어떻게 달라고 해야 하는지 책에서 배운 데로 복습하고 또 복습하고 들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미다 웅 레이찌 (me da um leite: 우유 한 개 주세요) 말했다. 내 예상대로라면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줘야 하는 데 그것보다 점원은 어린 나를 바라보며 뭐라고 질문 하는데 이때부터 내 머리 용량은 터져서 가출한 상황이 됐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무슨 말이었는지 알겠는데 질문은 어떤 종류의 우유를 원하는지 물어본 것이다. 하여간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고 레이찌! 레이찌! 말하자 알았다는 듯 우유를 줬는데 집에 와서 잘 못 사 왔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먹지도 않을 우유를 잘 못 사 왔다니, 아니 우유가 종류가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브라질에서 유통되는 우유는 3종류가 있었다. 먼저 가장 비싸고 테트라팩 종이상자에 들어있는 A형 (Tipo A) 우유는 젖소를 재배하는 대규모 농장에서 직접 소를 키우고 우유를 짜서 멸균하고 포장하여 유통하는 것이다. B형Tipo B) 우유는 그보다 작은 농장에서 젖소를 키워 우유를 짜는데 멸균 처리는 직접 하지 않고 다른 전문 공장에 보내 만들고 포장도 비닐로 만들어져 저렴하다. C형(Tipo C)은 원래 상파울로 도심에 많았던 소규모 농장에서 키우는 젖소에서 짠 우유를 멸균 처리 없이 그리고 냉장 시설 없이 철통에 넣어 동네를 돌아다니며 팔던 우유였다. 옛날 어르신들은 C형이 더 좋다고 하는데 당연히 상할 염려가 크고 무엇보다 도심에서 소를 키우는 농장이 사라지며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이 세 가지 우유는 맛과 영양 차이는 없고 단지 깨끗하게 만들어졌는지만 다르다. 점차 저렴하던 B 타입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며 얼마 전부터는 아예 없어졌다고 한다.


하여간 마시지도 않는 우유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아니, 먹으면 죽는 줄 알았다. 아예 멀리만 두던 우유와 유제품은 나와 상극인 것처럼 살았다. 자주 사 먹는 슈하스코(Churrasco)라는 빵은 등심을 철판에 구워 빵 사이에 넣고 그 위에 토마토와 양파가 들어간 상큼한 비나그레찌(Vinagrete)소스를 뿌려 먹으면 궁합이 잘 맞는다. 그런데 주변 친구는 빵에 고기와 치즈만 넣어 먹는데 느끼하고 이것만 먹으면 높은 콜레스테롤로 혈관이 막힐 것 같아 거부 반응이 많았다. 당연히 요구르트와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뚜껑부터 핥는다는 요플레도 먹지 않았다. 짜장면 먹는 중국집과 같이 세계에서 피자집이 가장 많은 도시인 상파울로에서 피자란 매주 먹어야 하는 운명적인 음식이다. 회사나 단체 활동 중 배가 고프면 모두 모여 먹기 편한 음식인데 가장 인기 있는 피자 중 무싸렐라(Mussarela: 모짜렐라) 는 그냥 하다는 치즈만 달랑 넣어서 오는데 이 위에 올리브유를 뿌려 먹으며 고소하다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의 힘이 컸을까 30대 후반 결혼하고 아내는 치즈를 먹을 것을 권해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배탈 나지 않을 만큼 조금씩 먹으며 맛이 들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부터 치즈가 나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에 착 감긴다. 결혼 전에는 한식을 먹을 기회가 적어 집에서 먹는 것은 대부분 한식이었는데 결혼 후에는 아내가 잘해줘 밖에서는 대부분 브라질 음식을 선호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치즈를 많이 먹게 되는데 탈도 안 나고 점차 입맛에 맞아 고기를 먹기 전에는 곡 치즈로 입맛을 돋우고 일부러 여러 종류 치즈를 찾아 먹기도 한다. 그래도 한국 우유와 달리 진한 브라질 우유는 아직 먹기 부담스러워 저 유당 우유만 먹었는데 이상하게 아내가 쌍둥이를 출산한 후 내 입맛도 변하며 일반 우유를 먹어도 더는 탈이 안 나고 있다. 유당불내증도 계속해서 우유를 먹으면 몸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데 지금 그 결과가 난 것 같다. 이제는 아침에 빵을 먹을 때마다 꼭 치즈와 우유 커피를 마시는 요즘 내 몸은 아내와 자식 사랑으로 변한 것을 느끼며 오늘도 천천히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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