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야기

상파울루를 통해 브라질 역사를 본다

착한브라질 2016. 5. 3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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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을 알려면 상파울로를 먼저 시작으로 알아야 합니다. 아래 글은 이번 30일에 영남일보에 게제된 글입니다. 원래 원고는 경북 Pride 상품 해외조사관으로 보낸 것인데 2000자로 줄여서 게제되었습니다. 전체 글은 맨 아래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제 사진은 이렇게 크게 올렸는지..ㅠㅠ 재미로 봐 주세요.







상파울루를 통해 브라질 역사를 본다

 

경북 PRIDE상품 브라질 해외시장 조사원

손정수

 

 

세계에서 14번째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인 메트로폴리탄으로 선정된 대도시 상파울루. 브라질을 대표하는 금융과 상업의 도시이자 인구 2,100만 명이 매일 600만 대의 차량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북중미에서 가장 큰 대도시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한인 5만 명도 대부분 이곳에 터전을 잡아 한인촌을 형성해 살며 브라질이라는 시장을 개척하는 관문으로 보고 있다. 대다수 기업의 본점이 있고 문화적으로나 상업으로나 가장 중요한 시장인 상파울루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역사를 알아야 한다. 1500 4 22일 포르투갈 항해사 뻬드로 알바레스 까브랄(Pedro Alvares Cabrarl)이 발견한 브라질 대륙은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가 이곳 상파울루에서 60km 떨어진 해변 도시 성빈센치(São Vincente)에 최초의 마을을 형성하며 인구가 늘게 됐다. 수 백 명이 살던 이곳에 유럽에서 도착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인디오 개종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해변에서 내륙 쪽을 보면 높게 드리워진 산맥 위에 인디오 마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선교사들은 새로운 선교지로 목숨 걸고 떠난다. 해발 750m 높이의 험한 산맥, 길도 없는 곳을 며칠간 헤매다 드디어 시내 중심지인 빠찌오 두 꼴레지오(Patio do Colegio)에 도착하여 첫 미사를 올린 날이 바로 1554 1 25일로 이날은 가톨릭 달력으로 성인 바오로의 날로써 여기서 유래되어 상파울루라는 이름의 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맨 처음 학교를 만들고 인디오를 대상으로 선교와 교육에 힘쓰며 새로운 지역에 대한 소문을 듣고 도착하는 백인들과 마을을 넓히며 세력을 늘려 간다. 처음 호전적인 인디오의 습격으로 해변에서 올라오던 개척자 가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고 몇몇은 식인종에게 잡혀먹히기도 했는데 차츰 인구도 늘며 마을 규모를 넓혀간다. 상파울루를 기점으로 아직 미지였던 내륙지방 탐험을 위해 떠나는 탐험대는 반데이란찌(Bandeirante)라 불렸는데 여기서 반데이란찌는 깃발을 든 기수를 뜻한다. 사냥꾼, 탐험가, 투자가로 구성된 탐험대는 말이 통하는 몇 인디오를 앞서 세우고 총과 식량으로 사용할 닭 몇 마리와 약간의 음식을 가지고 출발한다. 중간에 인디오 습격, 질병, 사고 등으로 살아 돌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떠나는 이들의 개척정신은 지금도 상파울루 사람들의 가슴 속에 많이 남아 있다. 하여간 원정대는 목숨 건 탐험 후 가져오는 정보와 지도를 정부에 보고하면 발견한 땅 일부를 하사받고 투자자의 새로운 지원을 받는데 이를 노리고 타지에서 몰리는 탐험가로 인구가 늘었다. 예수회가 포르투갈 왕정과 다툰 후 남미에서 쫓겨난 후 인디오와 백인 사이 결혼으로 혼혈이 많이 생기고 이들은 인디오 말 뚜삐-과라니(Tupi-Guarani)어와 포르투갈어를 합친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며 다른 지역과 다른 문화를 지키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브라질 도시 중 하나인 상파울루는 한 번도 수도가 아니었는데 많은 사람이 아직도 수도로 알고 있다. 미국 뉴욕과 같이 가장 큰 도시는 맞는데 수도는 아닌 이곳 그럼 왜 이렇게 거대해졌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면 경제적인 영향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옛날 개척시대에 가장 많이 기대하며 찾았던 금광은 결국 발견되지 않았고 대부분 지역은 미지의 세계로 남아 큰 변화가 없었다. 당시 이 땅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나무 빠우 브라질(Pau Brazil)은 붉은 나무라는 뜻인데 이를 삶으면 붉은 염료가 나오는데 이를 팔아 돈을 번 포르투갈은 새로운 사업으로 커피 재배를 위한 노력을 한다. 적도 지역부터 재배를 시도하지만 덥고 습한 북부지역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점차 선선한 지역을 찾아 내려오다 지금의 상파울루주 지역에 도착하자 맛있고 대량 재배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커피 원산지 에티오피아와 같은 위도에 있고 커피 재배를 위해서는 해발 100m 미만의 고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겨울이 필요한데 그 환경에 가장 최적화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커피를 비롯해 사탕수수, 오렌지, 목화 최고의 경작지가 되며 농업 중심의 도시가 되는데 이들 농산품은 모두 수출품이어서 이를 모아 가장 가까운 항구 도시로 보내게 되는데 그 모든 물자가 모이는 곳이 바로 지금 상파울루이다.

 

모든 물자는 상파울루 주를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찌에떼(Tiete)강물을 타고 이동하게 되는 데 지방에서 보내는 모든 상품이 이곳에 도착하면 여기서 다시 포장하여 수많은 노새를 이용하여 산토스 항구로 내려간다. 즉 해발 1000m가 넘는 지방에서 강을 타고 오는 올라오는 모든 물자를 다시 해안 도시로 가져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자원과 사람이 몰려드는 곳이 바로 상파울루이다. 넓은 대지에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곳인데 북쪽에서 내려오는 농수산품뿐만 아니라 북동부에서 내려오는 금석과 목재 그리고 남부에서 올라오는 육류와 가죽이 만나는 곳이다. 농산물로 많은 부를 쌓고 있던 19세기 초 수도였던 리우데자네이루와 더 북쪽 살바돌(Salvador)도시와 우루과이까지 뻗어있는 남쪽을 잇는 중심가에 있어 정치적으로도 힘을 많이 발휘하게 된다. 비옥한 토지와 환경은 농사짓기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먼저 물이 흔하고 비도 자주 오며, 눈 오는 겨울이 없고 연일 해가 뜨는 지진과 태풍 없는 천혜의 지역인 것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예전과 많이 다르지만, 상파울루 도시는 원래 여름에는 습도가 낮고 그리 덥지 않아 오후에는 비가 한차례 내려 해지면 선선한 곳으로 원래 선풍기도 사용 안 하던 곳이다. 물론 겨울에는 평균 영상 10도 정도로 대체로 쌀쌀하지만 그리 춥지 않은 곳이다.

 

천혜의 조건을 갖춘 상파울루 도시에 19세기 인구 증가 길이 열린다. 원래 인디오를 노예로 사용하였는데 너무 허약하고 전염병으로 사망률이 늘며 인구가 급격히 줄었고 특히 백인과 피를 섞으며 대다수 주민으로 남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실려 온 흑인 노예는 극심한 핍박 아래 농장에서 일하게 되고 이들의 노동력으로 상파울루는 브라질에서 가장 강력한 농업 주로 변한다. 1888년 노예 해방이 선포되자 일손이 모자란 농장주들은 유럽에서 대량으로 이민을 받아들인다. 이왕이면 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을 선호해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폴란드에서 많이 오는데 이들을 통해 들어온 유럽 문화 영향력으로 지금의 국제적인 도시로 변하게 된다. 커피 재배로 돈을 많이 번 농장주들이 들여온 유럽문화는 가장 큰 자산으로 남게 되는데 외국자본이 들어와 이곳에서 직접 생산을 위한 기업이 늘게 되는데 1930년대부터 공업 중심지가 된다. 당시 수입에 의존하던 방직은 물론 대부분 기계를 직접 생산하게 되는데 당시 남미 최대 항구 도시 싼토스(Santos)항구와 인접한 위성도시 Santo André (A), São Bernardo do Campo (B) e São Caetano do Sul (C) - Diadema (D)는 각 도시 이름 첫 철자에서 따온 이름 ABCD 지역이라 불리며 브라질을 이끌어가는 산업단지로 성장한다. 한때 국내 공업의 30%를 생산하며 2차 대전 후 늘어난 수출물량을 위해 지방에서 수천만 명의 노동자를 받아들였다.

 

1960~1970년 사이 급격한 산업화 현상으로 쭉 뻗은 고속도로를 타고 연결되는 상파울루 내륙 도시도 산업변화를 겪는다. 처음 농업으로 시작된 초기 가공산업에서 점차 투자와 기술 발전으로 첨단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남미 가장 큰 시장인 상파울루를 위주로 인근 도시에 공급이 편리한 점, 산토스 항구를 통해 수출이 쉽다는 점을 노려 산업이 점차 가전.자동차.화학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 한인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LG 전자는 상파울루에서 125km 떨어진 따우바떼(Taubate), 현대 자동차는 140km 떨어진 삐라시까바(Piracicaba), 그리고 삼성전자는 80km 떨어진 깜삐나스(Campinas)에 생산 공장을 가져 모두 상파울루 인근과 가깝게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산업 구조 개혁으로 다른 주 정부에서 토지 무상원조 또는 세금 감면 정책을 내세워 많은 공업이 시내를 떠나게 된다. 공장이 문을 닫았지만, 상업이 빠르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특히 다른 도시에서는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이벤트 산업을 육성시켜 연간 9만 건의 이벤트 개최로 50억 불(2015 기준) 규모의 시장을 만들었다. 외국과 교류가 활발하여 연간 1,500만 명이 도시를 방문하며 이 중 30%가 외국인으로 방문 목적을 보면 비즈니스(51%), 이벤트(22%)를 즐긴다. 1주일에 100개의 연극이 동시 상영되고 15.000개의 식당을 보유한 상파울루 도시는 분명 매력적인 도시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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