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야기

더 오르기 전에 사라...브라질 고인플레 시절

착한브라질 2012. 3. 2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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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브라질에 이민을 왔을 때인 80년대만 해도 브라질은 연일 엄청난 인플레로 나라 경제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고 있었다. 高 인플레는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게 만든다. 지금은 물가가 안정되었으나 고 인플레를 겪으며 사람들이 사재기 해대는 현상. 그리고 바뀌어 버린 브라질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이번 글에서 써보겠다.


인플레란 쉽게 설명하면 수요와 공급 사이의 불균형에 의해 발생한다. 필요한 제품의 수요는 높은데 공급이 제대로 안 된다면 제품의 가치가 올라가며 가격이 상승된다. 반대로 수요는 없는데 제품이 과잉공급 된다면 제품 가격은 떨어지게 되며 디플레가 된다.


두 개다 일반적인 현상들이며 지금도 세계 각국 경제는 모두 약간의 인플레와 디플레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의 고 인플레는 여러 가지 각도로 봐도 좀 심한 편이었다. 일단 고 인플레 시대에는 통화량이 급격히 늘어난다. 매일 같이 올라가는 가격을 따르기 위해서는 단연 돈이 필요한데 단위도 올라가지만 특히 시중에 돈이 많이 돌게 된다. 이는 정부가 필요한 수요를 위해 무책임하게 돈을 마구 찍어내기 때문인데 필요를 위해 찍어낸 돈은 결국 인플레라는 모닥불에 기름을 붓는 경우가 되어 오히려 더 화를 자초하게 된다.


내가 처음 브라질에 왔을 때는 아직 어려 돈에 대한 가치를 잘 모를 때였다. 한국에서야 그 때 당시만 해도 자장면이 한 그릇에 550원 하던 시절이라 1000원은 엄청나게 큰 돈이었다. 그런데 처음 브라질에서 와서 이모부께서 주신 용돈은 당시 5000 끄루제이로(84년 당시 화폐) 였으니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상상 해 보시길. 굉장히 큰 돈 인줄 알았으나 과장 한 봉지 사니 땡 하고 없어지는 돈을 보고 처음으로 통화량이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인플레가 가장 심한 시절은 85년부터 92년 사이였다. 최고 월 70% 이상의 인플레를 기록한 경우도 있었는데 연간 수백%의 인플레는 정말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하게 일상생활에 변화를 준다.


일단 먼저 돈을 가지고 다는 게 너무 불편하다. 수표나 카드를 가지고 다니면 편리하지만 학생이나 일반 사람들은 현찰 특히 소액권을 휴대하는데 백만원을 만원과 5만원짜리 지폐로 갔고 다닌다 해도 주머니가 빵빵 해지지만 문제는 이 돈으로는 달랑 빵 하나 사먹을 수 있다. 돈의 값어치가 너무 없다 보니 주머니에는 항상 지폐가 가득했으나 실제로 써보면 별로 큰 돈은 아니었다. 둘째로는 가격이 수시로 바뀌다 보니 무엇을 사려 해도 꼭 여분의 돈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예로 아버지께서 담배 심부름을 시키시면 어제는 5000원을 가지고 갔으나 오늘은 8000원 가지고 가봐야 살 수 있을 정도 였다.


 또 슈퍼마켓을 보면 상품에 가격표가 없었다. 그 이유는 가격표를 붙이다 보면 중간에 다시 가격이 올라 또 다시 새로운 가격을 붙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시행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발전한 것이 Taxação (등급 표시제)라는 것이다. 이게 무엇이냐 하면 일단 각 상품에 가격 대신 A1, A2 하는 식으로 등급을 매겨 넣는 것이다.

그리고 가게 입구에 큰 칠판을 두고 거기에 ‘현재 가격상황’ 도표를 만들어 지금 시세로 A1은 얼마 A2는 얼마 하는 식으로 매 시시각각 변하는 가격을 알려주는 나름대로 머리 잘 쓴 제도였다. 약간 과장된 말을 한다면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와 먹고 나올 때의 가격이 틀리기도 했다.


인플레 시대에는 제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이익을 많이 내고 반대로 현찰을 들고 있는 사람은 손해를 본다. 제품을 가지고 있는 업체는 제품 가치는 언제든지 똑 같지만 인플레로 가격이 자동으로 올라가기에 앉아서 배로 이익을 남기고 현찰을 받는 월급자는 가만히 앉아서 월급 값어치가 내려가기에 매월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직원 월급은 매월 오르지 못하고 3개월 또는 1년에 한번씩 인플레를 감안한 보충을 했기에 그러하다. 따라서 매월 5일과 15일이면 월급을 받은 사람들이 대형마켓에 몰려 한 달치 생필품을 사기 위해 국내 모든 도시들이 멈추게 될 정도였다.


돈이 있을 때에 한 시간이라도 빨리 사두는 것이 남는 것(돈의 값어치가 떨어지기 전)이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이러한 사재기 현상으로 가장 큰 돈을 번 업종은 단연 은행 이었지만 대형마켓도 큰 몫을 차지했다. 대형 하이퍼 마켓들은 계산대만 수백대가 있을 정도로 규모를 자랑하면 각종 생필품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프랑스의 까헤푸르 슈퍼마켓도 브라질에서 돈을 많이 벌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말도 있다.

  

사실 브라질보다 더 인플레가 심했던 콜롬비아에서는 휴지 보다는 돈으로 밑을 닦는 것이 더 싸다고 할 정도로 인플레는 경제를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브라질도 사실 80년대 전 까지는 잘 살았다. 특히 60~70년 후반까지는 매년 두 자리 수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했었다. 그러나 80년 딱 10년 동안 고 인플레는 브라질이 그 동안 이룩한 모든 부를 삼켜버렸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정통적인 이유는 군사정부의 무리한 정책 때문이다.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모든 수입을 금지시키고 일부에만 특혜를 베풀어 결국에는 국제에서 고립되고 경쟁력 없는 나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종이보다 못한 돈이 얼마나 값어치 없냐 하면 소액권 지폐는 어쩌다 길에 누가 흘려도 집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정부에서는 고 인플레로 넘쳐 나는 통화량을 잡기 위해 몇 차례 정책을 시행했으나 모두 실패를 맞았다. 그 동안 시행된 여러 정책 중 웃지 못할 정책을 몇 개 소개하겠다.


일단 올라가는 물가를 잡기 위해 여러 개의 생필품을 선정한 후 이들의 가격을 일정 기간동안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예로 오늘부터 60일간 콜라는 100 끄루제이로(Cruzeiro) 이다 하면 어떤 업소에서도 이 이상을 받을 수 없게 한다.


이렇게 하면 단기간 동안은 실질적으로 물가가 안 올라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동네 구멍가게에서 105 끄루제이로에 팔아도 아니면 술집에서 200 끄루제이로를 받는다고 신고하는 사람은 없다. 자유시장 원리가 무엇인가? 물가는 시장이 결정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를 무리하게 묶는다고 물가가 잡히는 건 아니다. 실제로 이러한 정책은 코웃음 치는 국민들의 무시 속에 흐지부지 무용지물이 됐다. 인플레는 시간이 돈이다.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물가가 올라 손해를 보지만 반대로 제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가격이 올라 배로 이익을 번다. 그래서 이 때 당시 일부 업체에서는 일부러 시중에 제품을 내놓지 않고 가격이 한창 올랐을 때 시중에 푸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농장주들이 소고기를 내놓지 않아 전국적으로 소고기 파동이 일어났을 때였다. 매 끼니 때마다 거의 고기 한 조각씩을 먹는 브라질 사람들로서는 소고기는 없어서는 안 되는 주메뉴이다. 그런데 일부 대형 농장주들이 힘을 합쳐 시중에 소고기를 내놓지 않아 난리가 났다.


각 매점마다 소고기를 사려는 사람들로 줄이 늘어섰고 심지어는 직장을 쉬고 고기를 사려고 아침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부에서는 여러 차례 농장주 대표들과 만나 협상을 벌였으나 높은 생산비용으로 지금 소를 잡으면 큰 피해를 입는다는 농장주들의 주장으로 합의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1주일 이상 소고기 파동으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정부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는데 다름 아닌 ‘소 압류작전’ 이다. 연방경찰, 법원 그리고 군대까지 동원된 이 작전은 소를 잡지 않아 나라를 혼잡하게 한 농장주들의 농장을 급습, 소를 강제로 압류해서 도살장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국민들의 원성이 심하고 고기를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내려진 조치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재산은 존중한다는 헌법을 무시한 행위였다는 비난을 받았다. 특히 소를 잡기 위해 동원된 경찰, 군인들이 완전 무장한 채로 농장을 쳐들어가 대문을 부시고 소를 모는 장면은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 되며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또 하나는 91년에 시행된 정책으로 어느 날 저녁 12시를 기점으로 은행에 500불 이상 예치하고 있는 모든 구좌를 1년간 동결하는 것이었다. 아닌 밤의 홍두깨라고 은행에 돈을 넣어둔 사람들은 돈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리게 됐다. 정부에서는 시중의 통화량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발표 했다.  


 이 정책이 발표되고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바로 서민들로서 시중에 갑자기 돈이 없어 서민들은 생필품은 물론 차비도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이 정책이 더 가관인 것은 구좌가 동결되는 1년간 이자는 물론 인플레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부에서는 이 1년 안에 인플레가 잡힐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 동안 시행된 모든 정책이 실패한 전통에 따라 2개월 후부터 다시 인플레가 급속도로 상승했다.


따라서 이 때 은행에 돈을 예치해둔 사람이 1년 후에 돈을 인출할 때에는 휴지 조각보다 못하게 되었다. 이 때 대다수의 중산층이 무너졌는데 안타까운 사람은 이 정책이 발표되는 날 달러가 떨어질 것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접해 가지고 있던 달러를 모두 풀어 은행에 예치한 사람이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후회한  것은 확실하다.


무지하게 늘어나는 통화량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최후의 방법으로 화폐 개혁을 하게 되었다. 화폐개혁이란 단위 끝자리 수에서 0 을 3개 없애는 것이었다. 예로 공식환율이 1 달러가 1000 끄루제이로라고 하면 끝에서 0을 세 자리 수 없애고  1 끄루제이로 노보(Cruzeiro Novo)가 되는 식이였다. 처음 화폐개혁 때에는 내가 용돈으로 가지고 있던 돈이 수십만 끄루제이로였는데 이게 달러와 1대1로 된다면 수십만 달러가 되나 하는 단순한 생각에 흥분하던 기억도 있다.


하여튼 84년부터 화폐는 끄루제이로 였으나 곧 끄루제이로 노보, 끄루자도(Cruzado), 끄루자도 노보(Cruzado Novo), 다시 끄루제이로, URV, 헤알(Real) 까지 모두 6번의 화폐개혁이 있었다. 그러니 이 때 없앤 0을 모두 붙여보면 끝자리 수 0이 15자리니까 단위가 100조가 넘게 되는 것이다.


시행된 화폐개혁은 그러나 모두 실패하는데 마지막으로 설정된 끄루제이로의 경우에는 화폐개혁을 한지 1년 만에 다시 URV로 바뀌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지난 9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현 헤알 정책은 인플레 공룡을 드디어 잠재우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인플레 시대에 가장 혜택을 많이 받던 중산층과 특히 한국 교포들은 안정된 경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오랜 인플레 시대는 사람들의 생활방식까지 바꾸며 어처구니 없는 정책도 남발하게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는 보지 못할 고 인플레에 대해서 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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