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야기

올케가 시누이에게

착한브라질 2021. 8. 1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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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아내가 세상을 떠난 시누이를 기리면서 쓴 글입니다.

글 안 쓴지 오래됐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내마음을 추스리려 정리하며 글로 남긴다.

 

내 시누이 손희정 루치나 Luccina Son 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시누이자 결혼 이전엔 친구로써 짧지도 길지도 않은 20대 후반에 만난 친구다.

 

친구들과 함께 나이트, 노래방, 쇼핑을 함께 했고, 내가 힘든 시기 멀리 있을 때 비행기 타고 와달라고 부탁하니 기꺼이 날아와 같이 주말을 보낸 의리 있는 친구였다.

 

결혼후엔 남편 욕할때 다 받아 주었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이혼하라고 나한테 얘기 할정도이고 (이런 부부싸움은 출산전 이야기)  싸움후 내가 집을 나와 찾아간 곳은 시누이집. 같이 욕하고  수다 떨고 마시고 푹 자라고 술도 꺼내다 준다.

 

시누이는 내친구의 친구로써 그전에 이미 많은 얘기를 들어서 생김새도 그렇고 깍쟁이에 나와는 많이 다른 이미지를 연상 시킨 완전 브라질레이라 같은 애 일거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우린 처음부터 너무너무 잘 맞고 스스럼  없이 잘 통했다.

 

호칭도  결혼후에는 반말은 그대로 서로를  `자기` 로 불렀다.

 

오빠가 평소에 동생같은 여자랑은 결혼 안할거라 했는데, 왠걸 나와 시누이는 닮은데가 많아서 같이 다니면 친자매 같다고 할정도였다. 

 

오빠가 평소에 말했던 이상형은 그냥 아무 쓸모 없는 말이 되어버렸고 증명됐다.

 

비슷한 시기에 내남편인 오빠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만났다. 그러면서 나딴에는 약간 의식을 하면서 우린 많은 인생, 가족 , 남자 얘기를 나누었다.

 

만나면 대부분 희정이가 말이 더 많이했지, 말도 워낙 많고 인생 스토리가 더 많았으니까.

 

결혼 안한 시누이는 당차고 똑부러지고 정도 많고 매력적이라 여러명의 20대 30 대 때 그리고 40 대에도 프로포즈와 혼사가 오고 갔고 충분히 결혼을 하고도 남았는데 포기하고 본인이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 후회는 하지 않았다.

 

내주위에서 친구들중 제일로 똑똑한 사람 중 하나이며 능력있고  효녀여서 시누이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도 안 했을 것이다.

 

그만큼 믿고 의지하면서 책임을 외면할수 있을거라고 계산이 섰기 떄문이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뭐든 알아서 재빠르게 척척이어서 난 뒤에서 그냥 동참하고 같이 하는 척과 잘했다고 해주기만 하면 됐었다.

 

핑계라면 그 중 하나가  귀찮은것도 있지만 난 임신을 해야하니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돼는 몸이라 많이 안 나섯다.

 

그렇다고 친구사이에서 시누올케관계, 마냥 편하고 좋은것만은 아니었다. 한떄는 우리 둘 얼굴도 안보는 사이로 2 년 가까이 지냈다.

 

내가 임신했을떄 나 임신한 배 한번도 본적 없고, 임신, 출산 축하 받은적 없고,  조카들 얼굴 직접 본거는 아이들 8 개월떄이니깐....

 

딱히 정확한 이유도 모른채...내 생각은 서로 너무 허물 없이 얘기하다 맞장구친게 상처가 된거라고 난 짐작한다, 분명 나와 얘기 할 용건인데 더이상 하지않고 오빠랑만  하기 시작, 그러면서 대화도 끊어지고 임신핑계로 내가 시누집  왕래도 멈췄다.

 

시부모님과 우리부부만 따로 밖에서나 보고 그랬지 , 별 눈치 못챈 오빠는 그려려니...

 

그래도 나랑 얼굴 안볼떄라도 우리 아이들과 살집에 새로 이사 들어간다고 세탁기도 선물 해주고 조카들 선물 등 샐수 없이  무지 해줬다. 

 

그리고 나중엔 뭐 그냥 또 자연스럽게 얘기 하고,  먼저 `온이들 바라기' 라는 단체방을 열어 매일같이 소통했다, 마지막날까지...

 

조카들 사랑도 유난했다, 지새끼마냥 입히고 씻기고 먹였다. 

 

아이들 볼떄마다 크는거 못보고 사랑을 주고받지도 못하는점 사무치게 안타깝다.

 

교육학과 출신 시누이, 정말로 조카들 사랑으로 돌봐주는데, 저럴수도 있나 싶을 정도이고, 나중에 조카들 공부도 좀 도움받고 몸이 안좋으니 늙어서 같이 살아야 할수도, 살아갈수도 있겠구나라고 문득문득 생각들었다.

 

건강문제가 항상 있던 시누, 코비드 걸리면 큰일날 사람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제일로 취약한 기관지, 혈전증, 면역성, 알러지를 고루 다 지니고 사는 사람이 코로나 걸린걸 평소 아픈 것으로 여기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았다.

 

아푼게 백신 휴우증인줄 알고 그냥 방에서 쌩으로 아무 조치 없이  일주일을 보내다가 그제서야 응급실로 갔다가 그 다음날 호흡기 달고 3주를 이겨내고 조금 희망이 보였는데 날벼락 같은 폐혈전으로 심정지가 오고 깊은 뇌손상을 입는다.

 

그 똑똑한 아이에게 뇌손상이 오다니 믿기지가 않고 말도 안돼는 상황이 왔다.

 

3주간의 불안과 걱정과 희망이 하루만에 너무나도  무서운 두려움과 절망으로 떨어졌다. 

 

의사의 말과 의료계 사람 얘기와 정보에 의심을 품고, 살수 있을거라고 현실을 못받아 들여 내 머리가 돌아 미치는줄 알았다.

 

매일매일 순간순간 기도하고 희망을 안 놓았다.

 

심정지가 온 그다음날 병원에 시누이를 입원 후 첫대면이 가능해져 면회 시간 무시하고 무조건 찾아갔다.

 

그자리에서 시누이를 잃을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누워있는 시누이에게  희정아라고 목놓아 부르고 울며불며 얘기했다.

 

가지말라고 우리랑 같이 오래오래 살자고, 눈만 뜨고 숨만 쉬고 있으라고. 우리 온이들이랑 부모님 어떡하냐고 걱정하지 말고 살아만 있으라고 애원했다.

 

나는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낄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이리 마음이 절절할줄...

 

가족 죽음앞에선 사람이 변하는구나를 경험했다.

 

흔한 드라마, 그 드라마는 다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걸 느꼈다.

 

병원에 누워잇는  시누이를 잃는 것보단 숨만쉬며 살아만있다면 더 바랄게 없었다.

 

평소의 생각은 `부모님 모시고 살자 얘기만 나와봐라, 이혼하고 말지`라고 늘 생각했었다.

 

딸을 뇌사로 보내야하니 시부모님이 무너지고 걷잡을수없이 다같이 무너진다.

 

특히 시어머님께 이제 우리와 같이 살면된다 말씀드리고 같이 붙잡고 절규했다.조금의 망설임과 거부감없이 같이 살면 된다고 난 결심이 섰다.

 

미쳐버릴것같은 4일이 지나고 5일, 마지막 인사를 하러 우리 부부만 병원에 들러 슬픈 작별을 하고 부모님 걱정 말고 잘가라는 인사와 나와 다음에 다시 시누올케로 만나자고 얘기했다.

 

저녁에 병원에서 오라고 연락이오고 뇌사판정 확인만 대기하다 사망판정 받고 그 다음날 장례준비를 했다.

 

8월 5일. 시부모님도 아이들 다들 잠이 들었고, 난 시누이의 스마트폰을 만져본다.

 

며칠째 못푼 비밀번호를 풀어보려 만지다가 내가 풀었다. 기념일, 생일, 영주권, CPF 번호 등 다 해봤는데 못 풀다가 내가 번뜩 한 낱말이 생각나서 해봤더니 열렸다. 

 

순간 놀랬고 기뻐 바로 캡쳐해서 남편에게 '나 올케 자격 있다!` 라고 문자를 보냈다.`눈물 난다` 라는 남편위 답에 또 울음이 터졌다. 스마트폰에는 여러 연락처와 필요한 것들이 정보가 가득하다...

 

이제는 잘 보내주는 일이 남았다. 장지에 가기전 오전 9 시경.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러 나가는 길.

 

한 녀석이 창문 밖으로 `고모천사 하늘에서 봤어요` 라고 말한다. 그리고 `살색` 이에요 라며 다시 확인해준다.

 

울음 꾹 참고 시부모님 모시고 장지에 도착, 수의를 입은 시누모습. 근데 수의가 살색이더라. 아이들에게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갔다. 우리 쌍둥이들 고모가. 이젠 하늘의 천사가 됐다.

 

비통하다 , 비통하고 또 비통하다.

 

쌍둥이들 고모는 하늘의 천사가 돼어 우리를 지켜줄거라 믿는다.

 

시누이가 이리돼니 우리가 함께 한 그 모든 시간이 사랑이었다라는걸 깨달았다. 시누이가 우리를 이렇게 남겨놓고  먼저 가는걸 예상이라도 한것처럼  미리미리 우리에게 사랑을 가득 가르쳐주려고. 또 마음에 사랑만 남겨주고 갔다.

 

나는 딸을 먼저 보낸 시부모님과 동생을 잃은  맘여린 남편과 함께 씩씩하게 살아 갈것이다 . 지금 이 마음 변할수도 있지만 난 나의 시누이가 복을 지을 기회를 준거라고 해석, 실행 하며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 갈거다. 우리 아이들과. 

 

그렇지않아도 빠듯한 생활 , 코비드로  더욱더 곤두박질친 가계부. 어떻게든 되겠지!

 

희정아 사랑하고 고맙고 미안하고 보고싶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 우리 시누올케로.

 

할일이 무지 많다. 하나씩 풀어가고 아푸지 말자......

 

글이 꽤 길다.  

 

쓸게 더  많은데 다 못 적겠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앞뒤가 안맞거나 오타 있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저희에게  지혜와 용기 주시고 모두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손희정 올케 신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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