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야기

30년 전, 그때

착한브라질 2022. 7. 8. 09:42

 

웬만한 것은 다 기억하는데 몇 날 며칠인지는 헷갈린다. 연도는 정확히 30년 전 1992년도. 당시 우리 집은 풍비박산 났다. 부모님과 형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여동생은 브라질에 남았다.

나는 당시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있는 파라과이로 떠났다. 여차여차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가방도 잃어버려서 걸친 옷만 가지고 브라질로 돌아왔다.

증명서 하나 없이 국경 넘어 브라질로 돌아오는데 연방경찰이 나를 세우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나쁜 기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돈 한 푼 없이 어떻게 돌아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기적이다.

돌아와서 보니 갈 곳이 없었다. 일단 친구 집에서 며칠 있었다. 팬티 한 장으로 어떡하든 버텼는데 바지가 헤어져 구멍이 송송 났다. 양말도 해지고 완전 거지가 됐다.

보다 못한 친구 어머니가 바지와 옷 몇 가지를 사 주셨다. 그냥 생각 없이 받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당시 내 신세는 처량했다.

하여간 이때부터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았다. "아낌없는 받는 나무" 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거리낌 없이 받으며 살았다.

어쩌다 허름한 방을 빌렸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주위에 마약 중독자가 넘쳤고 분위기 험악했다. 공용 화장실 딱 하나 있었는데 쓸 수 없어 자연적으로 결벽증이 생길 정도였다.

일이 꼬여 삼 일을 굶고 기다렸다. 배고픈데 돈도 먹을 것도 없었다. 말라비틀어진 빵을 물에 담갔다 10분 후 한입에 넣어 꿀꺽 삼켰다. 그리고 훌훌 털어 버리고 그 방을 나섰다.

다시는 굶지 않겠다는 다짐과 내 욕심을 버리고,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겼다.

이집 저집 전전하며 그렇게 살아남았다. 눈칫밥을 엄청나게 먹었다. 당시 몸무게가 55킬로였는데 이때부터 70킬로까지 훌쩍 늘었다. 사실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젊어서 그랬는지 큰 슬픔은 없었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생각과 나는 다 잘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항상 했다. 이처럼 낙천적인 기질은 좋을 때가 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었지만, 온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무기 삼아 열심히 일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 먼저 갔고. 남들이 하지 않는 것 솔선수범하여 나서다 보니 어찌 먹고는 살았다.

사실 아날로그 시대여서 그랬다.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통하지 못할 방법이다. 요즘은 최소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시대를 잘 타고 살아남은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그 시절은 추억이 아닌 고통으로 남았다. 하도 눈칫밥 먹어 나를 비판하는 환청도 들렸다.

너무 외로워 전화할 곳 없이 수화기 들고 울기도 했다. 성탄절에는 갈 곳 없이 떠돌며 주님에게 울부짖기도 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성격도 변했다. 이때의 먹먹함이 가끔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모두 시간이 지나며 변한다. 짝도 생겼고 아이들도 생겼다. 배를 하도 곪아 먹을 것에 집착하였지만, 이제 소화가 안 되는 50대 나이에 다가서고 있다.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며 내 얼굴과 삶을 되찾았다.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몸에 걸치는 것, 다른 사람의 인정, 이 모두 소용없고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려야 채워진다는 것도 배웠다.

무엇보다 그동안 참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받은 것을 되풀이하기 위해 나를 먼저 바꿨고 재능을 살려 주위에 나눔 사랑을 실천했다.

지금도 가진 것 없이 아등바등하며 살지만, 바닥까지 내려가 보니 산 목구멍에 거미줄 안 친다는 것도 몸소 배웠다. 바닥을 쳐야 올라간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았지만, 올해로 딱 30년 전 그해 겨울. 추억 아닌 고통이 생각나며 나를 힘들게 한다. 그냥 먹먹한 마음에 주절주절 글 쓰며 잊으려 한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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